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 이터널스(Eternals)는 수천 년간 인간 문명을 지켜온 불멸의 존재들이 자신의 기원과 존재 이유,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게 되는 서사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히어로 액션을 넘어, 신과도 같은 존재들이 인간성을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각자의 신념 속에서 충돌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진지하게 그려낸다. 수많은 시간을 거치며 겪은 사랑, 상실, 회의, 헌신은 단순히 초능력 이상의 무게를 지니며, 그 속에서 우리는 이터널스의 내면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역으로 비춰보게 된다. ‘신의 시선에서 본 인간’, ‘다름 속의 공존’, ‘희생과 책임의 균형’이라는 세 가지 관점을 통해 이 작품이 전달하는 묵직한 주제들을 분석해 본다.
신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다
이터널스는 지구에 고대부터 존재해 온 불멸의 수호자들이며, 인류의 역사 속에서 직접 개입하거나 그림자처럼 존재해 왔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것이 아닌 생명체, 즉 인간을 지켜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았지만, 정작 그 인간들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수천 년을 보낸다. 처음에는 단순히 지시에 따라 행동하던 그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들의 감정과 갈등, 진보와 파괴, 사랑과 증오를 지켜보며 혼란을 느끼게 된다. 특히 시르시는 인간과의 감정 교류를 통해 인간적인 시선을 획득하게 되고, 이카리스나 드루이그 같은 인물은 인간 사회의 문제에 대한 개입 방식에 대해 다른 해석을 갖는다. 이는 곧 절대적 존재로서의 이터널스가 사실은 인간보다 더 불완전할 수 있으며, 인간보다 더 고독한 존재일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들은 신적인 능력을 지녔지만, 인간성과 윤리적 선택 앞에서는 늘 갈등한다. 영화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 우리 역시 ‘우리가 만든 존재가 아닌 인간이란 존재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즉, 인간을 지켜야 할 이유가 단순히 임무가 아닌 감정의 공감과 책임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신적인 존재마저 인간의 감정을 배워야 한다는 역설적 주제를 제시한다.
다름과 충돌 속에서 공존을 배우다
이터널스의 내부는 하나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들의 철학과 행동 방식은 점차 달라지게 된다. 이는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존재 이유와 인간과의 관계, 우주적 계획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이카리스는 사명을 절대적으로 여겨 명령을 따르는 데 집중하지만, 시르시는 감정과 공감을 우선시하여 인간을 지키는 방법을 고민한다. 드루이그는 인간 사회의 폭력과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개입을 원하며, 퓨어토스는 자신의 능력이 인간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한다. 이런 다양한 관점은 단일한 진리를 거부하고, 다름 속에서 진짜 조화를 이루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기존의 히어로 영화들과 달리 특별한 지점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기준조차 상대적일 수 있음을 전면에 드러낸다는 점이다. 각자의 선택은 모두 나름의 논리와 감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사회에서 마주하는 윤리적 선택들과 유사하다. 이터널스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각자의 관점과 상처를 가진 인격체이며, 이들의 충돌은 결국 우리가 어떤 가치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영화는 이러한 내적 갈등과 대립을 통해, 진정한 공존이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위에 새로운 선택을 쌓아가는 것임을 설득력 있게 전한다.
희생이 만들어낸 책임의 무게
영화의 마지막은 거대한 진실의 폭로와 함께 이터널스 각자가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우주적 계획에 따라 지구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이터널스는 각자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며 팀은 분열된다. 하지만 결국, 인간의 가치를 믿고자 하는 이터널스가 힘을 합쳐 지구를 지키고, 그 과정에서 큰 희생과 상처가 남는다. 이카리스는 스스로의 신념과 사랑 사이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그 장면은 히어로의 희생을 미화하지 않고, 책임과 후회라는 감정까지 포괄하여 보여준다. 한편 시르시는 인간성의 상징으로 떠오르며, 단지 생명을 구한 영웅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포용한 존재로 성장한다. 영화는 히어로의 역할을 단순히 ‘구원하는 존재’로 그리지 않고, 끊임없이 선택하고, 갈등하고, 때로는 실패하면서도 나아가야 하는 존재로 재정의한다. 이러한 서사는 우리에게 책임이란 단지 역할이 아닌, 감정과 관계, 신념이 얽힌 복합적 개념임을 일깨운다. 이터널스의 선택은 단지 영화 속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회 속에서 타인과 연결되며 겪게 되는 윤리적 고민과 닮아 있다. 이 영화는 히어로가 되기 이전에 한 존재로서의 인간다움과 책임감을 어떻게 품어야 하는지를 묻는 작품이며, 그 울림은 스펙터클을 넘어 깊은 사유로 이어진다.